주일예배 설교

요엘(4) - 최후 심판과 구원의 완성 (욜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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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3-10-1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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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4) - 최후 심판과 구원의 완성 (3:1-21)

1. 여호와의 날

(1) 먼저 의의교사를 보내고 그 후에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욜2장)

- 요엘 선지자는 머지않아 예루살렘에 들이닥칠 바벨론 군대의 침공을 예언한다. 그 군대는 백성들이 지금 당한 메뚜기 자연재앙처럼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황폐케 할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이었다. 요엘은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회개를 촉구한다.

- 백성들이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올 때(욜2:13),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향하여 중심이 뜨거우사 심판을 돌이키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신다(욜2:18) 그것은 백성들에게 의의 교사를 보내주시고(욜2:23) 그 후에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백성을 의롭게 만드는 구원이었다(욜2:28-32)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통한 구원이었다.

- 본래 성령님은 에덴의 아담 속에 내주하셨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루아흐/성령)을 불어 넣어주셨다(창2:7).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을 마음에 모신 영적피조물이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남은 사람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 때문이다. 성령내주 때문에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품(벧후1:5신성한 성품) 성령의 열매(갈5:22)가 나타난다. 성령님은 아담의 범죄로 사람을 떠나셨고, 구약에서 특정 사람들에게만 사역을 위해 잠시 임재하셨다.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날에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주실 것이라 예언했다.

(2) 교회를 대적하던 악인을 심판하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신다(욜3장)

-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주어 구원하시는 날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날이다. 요엘은 하나님께서 대적을 심판하시는 여호사밧 골짜기, 판결의 골짜기를 예언한다.

- 그날은 두로 시돈 블레셋(4절), 애굽, 에돔(19절)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성전의 은과 금을 탈취하여 자기 신궁으로 가져갔으며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기 때문이다(5-6절) 그들은 유다 자손에게 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19절) 헬라 족속은 알렉산더의 헬라제국이 아닌 그리스인들의 조상, 성경에 기록된 야완의 후손(창10:2대상1:5,7)들을 말한다.

- 지금 이 나라들은 애굽을 제외하고는 없다. 두로 시돈은 레바논으로 에돔은 요르단이 되었으며, 블레셋 해양민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현대의 레바논과 요르단 애굽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은 요엘 선지자의 당시와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핍박했던 대적들이었다. 이들 나라에 대한 저주는 구약에서 종결되었으며 신약에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교회)를 대적하던 모든 나라, 열국을 의미한다.

- 여호사밧 골짜기는 판결의 골짜기(개역성경) 심판의 골짜기(개역개정)로 하나님께서 대적을 모아 심판하시는 곳이다. 그곳은 여호사밧이 찬양대를 앞세워 모압군대를 물리친 브라가 골짜기를 가리키기 보다는 여호와께서(여호) 심판하신다(사파트)는 여호사밧 이름에서 그 이미지를 가져온 것 같다. 스가랴 예언에 따르면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감람산에 임하시고 그 산이 남북으로 갈라진다고 했다(슥14:4) 이를 근거로 유대인들을 감람산 앞 기드론 골짜기를 여호사밧 심판/판결의 골짜기로 여기며, 성전과 기드론 골짜기를 바라보는 감람산 기슭에 묻혀 심판날 구원받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마지막 흰보좌 심판 장소를 예루살렘 기드론 골짜기로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전 동쪽에 있는 감람산의 그 이미지만 인정한다.

(3) 요엘 3장과 스가랴 14장은 동일한 예언.

- 여호와의 날에 열국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며 모여온다. 그때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대적들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이때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나오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영원히 함께하신다. 이방인들도 여호와의 전으로 모여와 초막절(구원의 완성절기)을 지키고 거룩한 백성이 된다.

- 욜3:1-12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찌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찌어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찌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찌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찌어다. 사면의 열국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찌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열국은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찌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

- 슥14:1-5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 욜3:18-21 “...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주리니 이는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

- 슥14:8-21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2. 최후 심판과 구원의 완성

(1) 요엘 선지자의 성령강림 예언이 중요한 이유

- 요엘이 예언한 여호와의 날은 두 가지 큰 내용이 있다. 첫째는 의의교사와 성령강림으로 하나님 백성에게 구원이 임하고 둘째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던 열국과 죄인들에게 최후의 심판이 임하는 종말이다. 그 이후 이사야는 새하늘과 새땅을 예언하고, 요엘, 스가랴, 예레미야 에스겔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심을 예언한다. 이러한 여호와의 날 예언을 다른 여러 선지자들도 동일하게 했다. 때론 여호와의 날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모든 문서 선지자는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요엘서의 여호와의 날 예언, 특히 성령강림 예언이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오순절 설교 속에 인용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오순절 성령강림을 요엘서 2장 여호와의 날 예언 성취로 확증하셨다. 성령강림은 이미 오순절에 임했다. 예레미야의 새언약은 성취되었고, 에스겔의 새성전 환상은 이미 신약교회가 세워짐으로 성취되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는 교회를 통해 전파되는 구원의 말씀이다. 성령강림이 임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는 오시지 않았고, 새언약은 출범되지 않았으며 제3성전이 지어지도록 기다리게 된다. 그것이 유대교이다.

-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을 구약에 예언된 여호와의 날이 임한 것으로 믿었다. 유대교는 여호와의 날을 마지막 종말 심판 날 하루로 기대하지만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그날이 시작되었고 마지막 종말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사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마지막 날(히1:2), 말세(벧전1:20)라고 불렀다. 지금이 지구 종말 마지막 심판 날이란 뜻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지금이 요엘과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구원과 심판이 이루어지는 여호와의 날이란 뜻이다. 완전한 구원과 심판은 주의 재림때 임할 것이다.

(2)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핍박당하나 주님께서 지켜주신다.

- 여호와의 날은 하루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의 신약교회 시대 전체이다. 사도요한은 구약의 여호와의 날 예언을 요한계시록 전체로 풀어 교회들에게 편지로 설명했다. 교회는 해와 달을 품고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쓴 거룩한 여자(계12장)이다. 교회는 거룩한 여자의 남은 자손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계12:17). 교회와 성도는 용(사탄), 열뿔짐승(정치권력) 두뿔짐승(종교권력,거짓선지자)의 유혹을 받으며 위협과 핍박을 피해 광야에서 살고 있다. 세상나라 음녀 바벨론은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연합하여 자줏빛 붉은 옷에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고 손에 금잔을 들고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매춘부(음녀)이다(계17장).

- 에베소교회, 사데교회, 라오디게아교회는 사람이 많고 물질적으로 부유하다. 이들은 재정적으로 안정된 보수적인 교회이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수도로서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가장 오래 심혈을 기울여 3년간 사역하며 세웠고 후에는 사도요한이 직접 사역한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모체이다. 사데는 황금의 도시이다. 사데에 흐르는 픽톨루스 강에 사금이 많이 생산되어 세계 최초로 금화를 만들어 공급한 곳이다. 사데에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예배당이 세워져 있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스스로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세 교회는 모두 예수님께 책망을 듣는다. 첫사랑을 잃어버리고(에베소) 살았다고는 하나 죽어있고(사데) 안약을 눈에 발라 자기가 벗고 있음을 보아라. 부끄러움을 알라. 토해내어 내치리라(라오디게아)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음녀 바벨론이 주는 물질풍요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진리는 벗어나지 않고, 기독교 진리를 따르고는 있으나 신앙의 열매가 없는 죽은 행실의 교회들이다.

-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는 진보적인 교회이다.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의 진리에서 벗어나 다른 교훈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받아들이거나(버가모) 그 진리를 가르치는 거짓교사 이세벨을 따랐다(두아디라). 예수님은 이들이 우상제물을 먹고 간음하는 음행자라고 책망하시며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엄히 촉구하신다.

- 서머나교회, 빌라델비아교회는 작고 어려운 교회이다. 이들은 환란과 궁핍 중에서 사탄의 회(모임)인 유대인들의 핍박을 당하고 있지만 바른 신앙을 가졌으며(서머나) 역시 사탄의 회인 유대인들이 핍박 속에서 적은 능력을 가졌으나 믿음을 지키는 교회이다(빌라델비아) 예수님은 이들을 크게 칭찬하셨다. 네가 환란과 궁핍 속에 있으나 실상은 부자다(서머나) 너를 지켜 환란의 때를 면하게 하겠다. 환란의 때에 너와 함께 하겠다(빌라델비아)

- 소아시아 일곱교회는 사도요한이 1세기 말에 직접 가르치던 실재 교회들이였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요한이 직접 사역하는데도 벌써 교회/성도들은 믿음의 진리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 교회들이 왜 열매 없는 죽은 믿음이 되고, 십자가 진리를 떠나 다른 교훈을 받아들일까? 예수님은 사도요한에게 그 이유를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광야에서 교회가 십자가 진리로 양육받으며 거룩하게 변화되지 않고, 음녀 바벨론의 사치 향락에 마음을 두거나 거짓선지자들의 다른 교훈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3) 주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원수와 대적을 멸하시는 마지막 심판이 있다.

- 요엘(욜3장) 스가랴(슥14장)의 예언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이스라엘로 모여온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며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어 쳐들어온다(욜3:10) 에스겔의 예언처럼 곡마곡도 예루살렘을 쳐들어온다(겔38-39장)

- 이들은 누구인가? 구약에는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실제 나라들이었지만 하나님의 구속사가 성취된 지금은 세상나라 전체를 지칭한다. 러시아 중국 이란이 아니다. 요엘서 3장의 두로 시돈 블레셋 애굽 에돔과 같은 의미이다. 이스라엘 북방에 위치한 나라이며(겔39:2)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세상나라 군대를 상징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왕국을 침공하는 세력은 모두 북쪽에서 왔다(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동쪽 서쪽은 전무하고, 남쪽 애굽의 침공은 거의 없다. 구약 선지서에 북방군대들이 언급되는 이유이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막아주신다. 그들은 모두 새의 밥이 된다.

- 사도요한은 여호와의 날에 열국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여오는 구약예언을 아마겟돈 전쟁으로 해석한다. 아마겟돈은 히브리어 하르 므깃도(므깃도산)의 헬라어 음역이다. 큰 전투가 벌여졌던 이스르엘 평야 므깃도 요세의 전쟁 이미지를 따온 것이다. 아마겟돈 전쟁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 입에서 나온 개구리처럼 더러운 영이 이끄는 미혹의 싸움이다. 개혁신학은 아마겟돈 전쟁을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3차대전 핵전쟁이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대적하는 진리 미혹의 전쟁으로 믿는다. 이 전쟁은 세상열국이 교회를 핍박하는 실제 전쟁으로 최종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지금 벌어지는 포스트모던 사상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이라 믿는다. 마지막 일곱째 나팔은 이미 불러졌고, 여섯째 진노의 대접은 이미 부어져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최종 일곱째 대접인 바벨론 멸망만 남았다. 우리 후대들은 점점 더 심해지는 아마겟돈 진리미혹 전쟁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 열국이 아마겟돈으로 몰려와 온 세상을 미혹할 때, 예수 그리스도는 백마 타고 앞서 싸우시고 교회는 세마포를 입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거룩한 전쟁을 벌인다. 교회는 전쟁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 교회의 무기는 세마포를 입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 것뿐이다. 빛나고 깨끗은 세마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해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계19:8)

- 때가 되면, 하늘보좌에 앉아 성령으로 교회와 함께하시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국의 심판 주로서 재림하신다. 그날 모든 성도는 주와 같이 영화로운 모습으로 부활될 것이고, 열국과 세상사람들은 마귀와 같이 죄로 가득찬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다. 요엘과 스가랴는 그날에 열국이 심판받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영원히 함께 하시며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난다고 예언했다. 에스겔은 그 성전을 여호와 삼마라고 불렀고 사도요한은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성에는 건물성전이 없고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 성전이라 했다(계21:22).

<결론 및 적용>지금은 말세지말, 구원 완성이 멀지 않았다.

(1) 그날과 그 시간은 정하지 말라.

- 역사의 종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결정하신다. 예수님도 겸손하게 아버지의 권한으로 돌리셨다. 그날과 그 시간을 정하는 것은 성경 몇 구절을 읽고 내가 하나님의 마음속을 꿰뚫어 알 수 있다는 망언중의 망언이다. 코로나로 온 세계가 멈춰버림을 아무도 상상 못했듯 하나님은 언제든지 역사를 중단하고 세상을 끝내실 수가 있다. 세상 역사가 진행됨은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세계종말의 날은 우리가 생각하고 찾아낼 영역이 아니다.

(2)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시간을 생각해보라. 마지막 심판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개혁주의 종말론은 그날과 그때를 정하는 불건전 신비주의 종말론 비판만이 아니다. 우리는 철저히 종말신앙을 가지고 개인종말을 피부로 느끼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매일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