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호세아(2) - 이스라엘 회복과 신약교회 (호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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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4-04-2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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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2) - 이스라엘 회복과 신약교회 (1:1-11)

1. 북이스라엘의 바알숭배

(1) 시내산 언약체결을 결혼으로 비유

-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표현한다. 이는 시내산 언약체결을 결혼언약으로 보는 것이다. 이 땅에서 결혼은 죄로 인하여 서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에덴에서 결혼은 결코 나눠지지 않는, 결코 나눌 수도 없는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이었다.

- 하나님은 애굽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시내산 언약을 주시며 자기 백성을 삼으신다. 마치 결혼언약처럼 깨어지지 않도록 분명한 언약을 세우심이다. 하나님은 남편 이스라엘은 아내이다. 그리스도는 신랑 교회는 신부도 똑같은 내용이다.

(2) 이스라엘은 남편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남편으로 삼았다.

- 실제로, 고멜은 자기 남편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남편으로 삼아 음행하였다. 하나님은 고멜을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숭배하는 이스라엘로 말씀하신다.

- 사54: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2. 이스라엘 회복과 신약교회

(1) 이스르엘(=아합처럼 심판하겠다), 로루하마(=긍휼 베풀지않겠다), 로암미(=내백성 아니다)

-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생활은(호1-3장)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남편삼아 음행하는 북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애(헤세드)하고 계신지 보여주는 행위예언이다. 그중 호세아 1장 고멜이야기에서 북이스라엘 심판과 회복예언을 모두 기록하고, 2-3장에는 고멜이야기를 추가보충한다. 나머지 4-12장은 고멜로 상징되는 북이스라엘의 회개촉구와 심판, 회복예언을 기록한다. 그래서 호세아서는 1장이 가장 중요하다.

- 여로보암 2세 때, 남북왕국 백성들은 다윗과 솔로몬 이후 최고의 번영기를 지나고 있었다.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 아람, 애굽 등 주변 대적들을 자국내부 문제에 빠져 외부에 힘을 쓰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때가 하나님께 돌아올 마지막 회개의 기회였다. 북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숭배했다. 그들은 회개를 촉구하는 호세아의 예언은 무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판을 말씀하신다. 고멜이 낳은 세 아이의 이름은 북이스라엘에게 닥칠 순차적인 심판예언이다.

- 이스르엘, 첫아이 이름은 머지않아 예후왕조가 아합과 이세벨처럼 칼에 진멸된다는 예언이다. 이스르엘은 아합의 궁전이 있는 곳이고 그 왕궁 앞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다. 아합은 그 포도원을 가지고 싶어했는데 나봇은 율법에 따라 땅을 팔지 않았다. 이세벨은 사마리아 장로들에게 편지를 보내 거짓증인을 세워 나봇을 죽이고 이스르엘 포도원을 빼앗는다. 하나님은 이로 인해 아합을 길르앗라못에서 아람군인 화살로 죽이시고, 이세벨과 그의 자녀들은 예후의 칼에 진멸되게 하셨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예후왕조가 아합과 이세벨처럼 진멸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 예언 그대로 여로보암 2세가 죽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이 되었는데 6개월 만에 모반당해 죽는다. 이로서 예후 왕조는 완전히 멸절되었다.

- 로루하마, 둘째아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는 예언이다. 여로보암 2세가 죽고 30년동안 4번의 왕위찬탈이 일어난다. 나라가 매우 불안한데, 므나헴 때 앗수르 디글랏빌레셀3세(불)가 침공하여 은 1천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게 되었다. 또한 베가 때 역시 디글랏빌레셀3세가 침공해서 갈릴리와 요단동편 지역을 점령하고 백성들을 노예로 잡아갔다. 이후 요단동편 르우벤, 갓, 므낫세(반)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지파에서 사라진다. 여로보암 2세가 죽고 불과 12년 후에 벌어진 일이다(BC740).

- 로암미, 셋째아이 이름은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으로 북이스라엘의 최종멸망 예언이다. 히스기야 4년 곧 호세아 7년에 앗수르 살만에셀이 침공하여 사마리아성을 포위하고 3년후 호세아 9년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사르곤 2세에게 멸망당한다(BC722년) 그후 민족혼합정책에 따라 백성은 앗수르 각지역으로 끌려가고(왕하17:23) 앗수르에 점령당한 타민족들이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들어와 정착한다(왕하17:24-33) 이후 북이스라엘 여덟 지파도 없어진다.

- 한편, 북이스라엘은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지만, 남유다는 긍휼히 여기신다는 예언이 있다.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7절) 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사르곤 2세의 아들 산헤립의 침공때 성취되었다(BC701) 히스기야 14년에 산헤립은 라기스로 쳐들어와 남유다 46개 성을 모두 점령하고 마지막 예루살렘만 남겨두었다. 예루살렘은 포위되고 히스기야는 새장의 새처럼 갇혔다. 이사야는 남유다의 구원을 예언했고 히스기야가 성전에서 기도하자 그날 밤 주의 천사가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치셨다. 산헤립은 앗수르로 돌아가서 죽었고 남유다는 구원받았다(왕하18장과 산헤립 비문) 똑같은 상황에 북이스라엘은 멸망했지만 남유다는 구원받았다. 북이스라엘은 호세아와 아모스의 예언을 들었지만 회개하지 않았고, 남유다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듣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 호1:10,11,호2:1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내백성이다)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긍휼히 여긴다)라 하라.”

-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부흥운동에 도움을 주었지만 근본적인 회개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남유다는 므낫세의 범죄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선포 되었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선지자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한 우두머리(그리스도)를 따라 회복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들이 참이스라엘 곧 신약교회이다.

(2) 누가 아브라함 자손이고, 누가 이스라엘인가?

- 본래 아브라함은 아모리인에 속한 바벨론 갈데아우르 사람이었고,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란에 기거하던 아람사람이었다(신26:5). 그런 아브라함이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을 향하여 유프라테스강을 건넜을 때였다.(히브리의 어원은 강을 건넌 사람들임) 강을 건너며 아브라함은 아모리인이 아닌 히브리인의 첫조상이 된다.

- 야곱의 어원은 뒤에서 형의 발꿈치를 잡는 자(아카브), 속이는 자였다(호12:3) 그는 언제나 뒤에서 속이며 이기려는 자였다. 이러한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뀐다. 얍복강을 건널 때다. 얍복나루터에서 그는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하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는 자라는 뜻이다. 이전까지는 수단방법 안가리고 자기 힘으로 이기려던 자가 얍복강을 건너며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는 자가 되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 자손과 이스라엘 나라는 이런 의미였다.

- 예수님이 오심으로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구원계시가 완전히 드러났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 구원계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1-2)

- 신약에서는 아브라함 자손과 이스라엘을 신약교회라고 확인한다. 바울은 아브라함 자손을 약속의 자녀 곧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말하고, 이스라엘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따라 낳은 자들이라 한다. 바울은 이삭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직접 말하고 호세아 1:10-11을 직접 인용하며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바로 신약교회라고 단언한다.

- 갈3:6-7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 갈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 갈6:15-16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

- 롬9:7-9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 롬9:10-13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롬9:24-26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3) 구약의 모든 예언은 이미 신약교회로 성취되었고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 아모스의 다윗의 장막 회복예언(암9:11)은 야고보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성취를 확인했고(행15장) 호세아의 이스라엘 회복예언(호1:11)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성취를 선언했다. 요엘의 성령강림예언(욜2장)은 베드로가 오순절 설교에서 성취됨을 말했으며(행2장) 스가랴의 참목자 예언은 예수님이 직접 자신에게 성취됨을 말씀하셨다. 말라기의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예언은 세례요한으로 성취되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언약은 이미 출범되었고, 이사야의 새하늘과 새땅, 에스겔의 마른 뼈 생기 군대와 새성전은 이미 우리가운데 성취되었다(already, not yet).

- 이 모든 예언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교회로 모두 성취되었고 주의 재림과 부활의 날에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구약의 여호와의 날,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신약교회로 먼저 도래했다.

<결론 및 적용>죄사함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은 성도들은....

(1) 구원받았지만 성도가 여전히 죄와 싸워야 하는 이유

- 다니엘의 하나님 나라 70이레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 그리고 성전파괴(AD70)로 이미 69.5이레가 성취되고 마지막 반이레, 한때 두때 반때(0.7%)만 남았다. 이 기간이 2천년이 지난 것은 70이레가 하나님 나라 완성 시간이 아닌 하나님 나라 완성도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모으시기 위하여 인류역사를 계속 진행하고 계시고 우리 개개인은 그 안에서 구원받았고, 하나님께서 우리 후대를 구원하심을 바라보고 있다.

- 우리 모두는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지만 아직 우리 자신의 죄의 본성과 힘들게 싸우고 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대부분이 이 때문이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류역사를 계속 진행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 당장 죄의 세상이 중단되고 주의 심판과 우리 몸의 부활을 기대하지만 하나님께서 더 불러 모으실 당신의 백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안하고 계신다. 대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하시며(칭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살아가게 하셨다.

(2) 성령을 힘입어 교회를 사랑하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자.

- 우리는 죄사함받고 의롭다하심(칭의)를 얻었지만 여전히 죄의 본성이 있는 죄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해주신 것이지 실제 의인은 아니다. 성령내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죄인이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의 권세를 이기고 의를 행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로 살아가다가 주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을 만나는 우리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