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마가(19) -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막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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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323
Date
2023-02-0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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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19) -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8:10-21)

1. 예수님의 기적과 표적

(1) 선지자들과 사도들

- 성경에는 사람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일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런 기적은 모든 선지자에게 보편적이지 않다. 주로 몇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모세, 엘리야 엘리사, 베드로와 바울이다. 또한 그들도 날마다 매번 기적을 행함은 아니다. 중요한 사건 앞에 몇 가지 기적을 보인 것이다. 그들의 행한 기적은 그들이 처했던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일 때문이었다.

- 모세는 하나님 나라 언약이 시작되는 출애굽 과정에서 많은 기적이 필요했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하나님 나라 언약이 중단될 큰 위기 속에서 아합의 바알우상과 싸우기 위해 기적이 필요했으며,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 언약백성/교회를 확산시킬 때 기적 행함이 필요했다. 기적 행함은 그들이 다른 선지자보다 우월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에 필요해서 그들을 사용하신 것뿐이다. 본래 선지자와 사도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기적 행함은 그들의 주된 사역이 아니다.

(2) 이사야 35장 메시야 / 그리스도 예언을 성취.

- 예수님은 달랐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 메시지를 전파하실 뿐 아니라 늘상 기적을 베푸셨다. 짧은 공생애 동안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횟수와 내용을 보면 모세 엘리야 엘리사는 감히 비교될 수 없다. 그만큼 예수님의 기적은 많았고 그 내용은 더 놀라웠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기적을 베풀었지만, 예수님은 죄사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위로 직접 기적을 행하셨다.

- 예수님의 기적은 당신께서 모세 엘리야 엘리사보다 더 능력이 많음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구약에 예언된 새언약의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는 표적이었다. 예수님의 기적은 전도를 위한 능력행함이 아니다. 구속사적 사건이다.

- 사35:5-6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 마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1) 요나의 표적 밖에는...

①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 예수님은 갈릴리 동편 데가볼리 수시타 근처에서 칠병이어 표적을 보이시고 배를 타고 갈릴리 서편 달마누다(=막달라,마가단)로 가신다. 이로서 두로의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시며 시작된 예수님의 이방인 선교사역은 끝나게 된다. 참고로 가버나움과 막달라는 게네사렛에서 가까운 주변마을이다. 예수님은 이 마을들 어디에선가 바리새인들로부터 손 씻는 규례(장로들의 유전) 질문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정결함이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주시려 이방인들에게로 가셨다.

- 예수님이 이방인 선교사역을 마치고 돌아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다시 예수님께 표적을 보이라고 한다. 이미 그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표적을 보았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이사야 35장 예언이 성취되는 표적을 보았다.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조금 전 갈릴리 서쪽에서 일어난 칠병이어 기적 현장에 함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께 또 표적을 보이라고 한다. 바리새인들의 의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려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고 책망거리를 잡으려함이다. 지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입증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② 어찌하여 표적을 구하느냐...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 표적(세메이온)이란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증표를 말한다. 예수님은 이미 수많은 표적을 보이셨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놀라운 일(기적)들은 당신께서 죄사함과 성령세례를 베푸실 새언약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구약 예언의 성취였다(사35:5-6) 예수님의 기적은 바로 그 표적이었다(마11:5). 모세와 엘리야 엘리사, 베드로 바울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기적(두나미스)을 행했다. 그 기적은 그들이 새언약의 그리스도임을 나타내는 표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역 속에서 당신의 사심을 나타내신 놀라운 기적일 뿐이다.

-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의도를 아시고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벳새다로 가신다. 예수님은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한 그들에게 당신께서 그리스도 이심을 입증해야 할 이유가 없다.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갈릴리 어부들의 골목대장 노릇하는 나사렛 촌뜨기에 불과하다. 교만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 참고로, 유대사회에서 바리새인은 존경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시작과 동기는 아름답고 거룩했다. 그들은 대제사장과 서기관 등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헬라문화를 받아들이고 로마권력과 결탁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율법을 바르게 지키며 살겠다는 거룩한 신앙인들이다. 그러나 바리새 종교개혁운동은 그리스도와 성령을 모르면 필연적으로 장로들의 유전(할라카)을 지키고 탈무드를 연구하는 행위종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 없이 율법(성문,구전)을 철저히 지키려 해보라. 그 결론은 랍비유대교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이들의 극단적 후예가 오늘날 초정통파 유대인들이다(하레디).

③ 요나의 표적 밖에는...

- 본문에서는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않겠다”(막8:12)고 하시나 평행구절인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한 말씀을 더하신다.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마16:4) 바리세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할 표적을 보이라고 질문한다. 무슨 표적을 보여줘야 그들이 더이상 표적을 구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완전한 표적은 무었인가?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강림이다. 구약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를 예언했다. 그분은 오셔서 자신의 피로 백성의 죄를 대속하고(사53장) 백성들 마음속에 성령을 부어 주사 새언약의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렘31:31-34).

- 모든 것은 십자가에서 시작되었다. 새언약 하나님 나라는 성령께서 백성들 안에 내주하심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사 성령을 파송하셨고, 그보다 먼저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와 부활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강림을 나타내는 비둘기나 무덤입구를 막고 있던 둥근돌을 대표상징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이다. 모든 것은 십자가 죄사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부활과 성령강림은 십자가의 결과들이다.

- 마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2) 맘몬신앙과 진리 없는 신앙생활을 조심하라

① 예수께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

- 예수님은 표적을 요구하는 바리새인들을 뒤로 한 채 막달라를 떠나 벳새다로 가신다. 예수님은 배에서 제자들에게 떡이 있느냐고 물으시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먹을 떡이 한 개 밖에 없어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예수님은 조금 전 표적을 요구하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태도와 교훈(가르침)을 말씀하심이다(마16:12) 그렇다면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은 무엇일까? 이보다 먼저 예수님이 세우신 신약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알아야 한다.

- 예수님은 새언약 백성/신약교회를 출범시키셨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창조하신 새사람,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인류, 에덴의 회복과 완성을 바라보는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아담, 노아,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으시고 모세에게 율법과 성막을 주시며 이스라엘을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세우신다.

- 구약 이스라엘은 그리스도 구원계시를 간직한 나라였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왕들은 다윗 히스기야 요시야(조금 더하면 아사 여호사밧 정도)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지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율법과 성전건물을 우상숭배 하더니 점점 가나안의 바알과 앗수르 바벨론의 신들까지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하시고 성전을 파괴하셨다.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하는 건물성전을 파괴하신 것이다. 사실 이때 건물성전의 역할과 사명은 끝난다. 이때 선지자들은 새언약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을 계속 예언하며 구약성경을 마친다.

- 새언약은 성령께서 각 사람 속에 내주하심으로 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언약이다. 이는 출애굽때 시내산에서 주신 옛언약과 비교되며 제시되었다. 돌판에 새긴 하나님의 법을 사람 스스로 지켜 거룩해지라는 옛언약과 하나님의 법(성령의 법)을 사람 마음속에 두고 사람이 즐거운 마음으로 지키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겠다는 새언약이다. 옛언약과 새언약의 분기점은 성령세례(성령내주)이다. 이를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은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일을 담당하셨다. 백성은 죄용서 받아야 했다.

- 무엇이 기독교를 만들었는가? 기독교의 경전은 유대교의 1/100에 불과하다. 유대교의 미드라쉬 주석책과, 탈무드(미쉬나)의 분량은 신약성경의 100배보다 더 된다. 참고로 탈무드는 구약성경의 27배 분량으로 신약성경의 81배이다. 여기에 구약성경(타나크) 각 구절에 해석을 달아놓은 미드라쉬 주석책도 방대하다. 어설프게 흉내 내서는 기독교는 유대교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 기독교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죄사함과 성령세례를 베푸실 새언약의 그리스도임을 믿는 가르침이다. 그 확실한 근거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은 성령강림이다. 바로 성령내주 곧 성령세례이다.  모든 성도는 성령세례(성령내주)를 지금 실제로 체험하고 있다. 성령내주로 인한 중생회심, 칭의성화, 연합견인 체험이다. 이 성령내주(성령세례) 실재가 없다면 기독교는 구름 잡는 가르침이 된다. 거짓종교가 된다.

② 헤롯의 누룩 – 세상재물, 권세를 좋아하는 맘몬신앙

- 마가는 바리새인만 언급하나(막8장) 마태는 사두개인도 함께 있었다고 했다(마16장). 그래서 마태는 헤롯대신 사두개인의 누룩이라 했다. 사두개인은 친헤롯파이니 같은 말이다. 중요한 것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헤롯)은 모든 면에서 서로 대립하는 적대세력이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검소하게 사는 중산층 일반서민인 반면 사두개인은 대제사장 사독의 후예들로 부유한 귀족 특권층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와 특권을 지키기 위해 헬라문화에 개방적이고 지배권력과 협력적이었다. 그들은 로마 통치자들에게 막대한 돈을 주어 대제사장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두개인들을 바리새들인이 좋아할 리 없다.

- 또한 바리새인과 헤롯(사두개인)은 교리적으로도 다르다. 바리새인은 성문율법(타나크 구약성경)와 구전율법(장로들의유전, 할라카, 후에 미쉬나,탈무드) 모두를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지만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 믿고 나머지는 거부한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구약성경에 있는 천사, 영혼, 부활 심판을 믿으나 사두개인은 모세오경에 없다고 천사 영혼 부활 등을 거부한다(행23장) 이렇듯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른 두 적대세력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비난할 때는 손잡는다.

- 사두개인은 그들은 모세오경만 인정하므로 아주 보수 정통신앙인일 것 같지만 삶에서는 정 반대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와 특권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셀루커즈 헬라왕조와 로마통치 헤롯왕과 결탁하는 아주 세속주의자들이다.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세상권세와 재물축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 구원진리는 잘 모르고 또 관심 없다. 그냥 교회 나온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재물축복 받는 것이 신앙생활의 동기요 최종목표이다. 그것이 헤롯의 누룩 곧 맘몬신앙이다.

③ 바리새인의 누룩 – 그리스도 진리 없는 신앙생활

- 진리 없는 신앙생활은 죄를 이기지 못하며 일반종교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진리란 무엇일까? 거룩케 되는 구원 진리이다. 죄사함과 성령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포도나무에 접붙여지는 것이다. 원보혜사이신 예수님은 진리요 생명이셨다.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도 진리의 영이시며 생명의 영이시다. 진리의 성령은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진리를 깨닫게 해주신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신다. 그 진리는 새로운 진리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가르쳐주신 진리이다. 죄인이 구원받는 길은 예수님의 속죄를 힘입어 죄사함 받고 성령세례(내주) 받는 것 밖에 없다. 이 진리 없이 열심히 교회생활하면 바리새 종교인이 된다.

- 스룹바벨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초라한 움막수준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오시기 전까지 사람들이 건물우상숭배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 백성은 초라해진 스룹바벨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만 그 건물을 자랑하지는 못했다. 건물이 아닌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헤롯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초라하게 만드신 성전을 엄청나게 크고 화려하게 보수 개축하였다. 헤롯성전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악한 성전이다. 이로 인해 백성은 건물성전에 몰입되어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에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제 사람들이 다시는 성전에 몰입되지 않도록 건물성전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셨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다시 율법과 건물성전에 몰두하는 사람들이다.

- 본래 바리새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열정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사두개인들의 세속화를 반대하며 율법을 제대로 지키며 바르게 믿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려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며 천국문을 막고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다고 책망하신다. 그들이 신앙열심이 식어버린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 구원 진리를 모르고 자기 의로 그 일을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죄사함과 성령세례(내주)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교적 열심만으로 결코 죄를 이길 수 없다. 내면의 죄는 그대로 두고 행동규례만 철저히 지키니 외식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 마23:1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롬10:2-4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결론 및 적용>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이 아닌 예수님의 누룩으로...

(1) 복음이 겨자씨 같이 작고 초라해 보여도 낙심 말라.

(2) 우리 삶이 그리스도 구원진리로 굳게 세워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