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마가(21) - 십자가에서 부활을 보아야 (막9:1-13)

Author
GOSPEL323
Date
2023-02-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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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21) - 십자가에서 부활을 보아야... (9:1-13)

1. 예수님은 그리스도

(1)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랍비), 큰 능력을 행하는 선지자,

-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였다. 예수님은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하던 죄사함과 성령세례의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셨다. 죄인들이 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구원이고 복음은 그 구원을 받는 방법이었다.

- 사람들은 예수님을 랍비나 선지자로 이해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기적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지자나 율법선생 랍비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구약선지자들이 예언하던 그리스도이셨다.

(2) 예수님은 새언약의 성령을 부어주시는 그리스도

-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은 새언약의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신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는 표적이었다(사35:5-6). 질병치유는 예수께서 죄사함을 주신다는 증거요, 귀신축출은 예수께서 사탄의 나라를 무너뜨리셨다는 증표였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시는 그리스도시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셨다.

2. 십자가에서 부활을 보아야

(1) 인자가 예루살렘에서 죽임당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

① 그리스도의 십자가

-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거부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믿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시는 기적은 분명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큰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제 곧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세상나라 로마를 멸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할 것으로 생각하고 내심 기대했다. 비록 그 방법이 군대를 일으켜 로마와 전쟁하는 것은 아닐찌라도 예수님은 지금까지 보여주신 놀라운 권능으로 얼마든지 그들을 굴복시키리라 확신했다.

-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상상치 못한 말씀을 하신다.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겠다는 것이다. 물론 부활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의 귀에는 십자가만 들렸다. 그만큼 십자가는 제자들에게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예수님이 로마를 굴복시키고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기는커녕 고난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겠다니... 세상에... 이제 곧 예수님이 세우실 하나님 나라에서 좌편에 우편에 앉을까 생각했는데 하나님 나라 회복은커녕 예수님이 죽으신다니... 그것도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신다니...

- 제자들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들도 다른 유대인들처럼 다니엘이 예언한 인자 메시야를 기다렸다. 인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세상나라를 다스릴 권세를 얻으시는 영광의 그리스도(단7장)셨다. 그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백성의 죄를 대속하시는 고난의 그리스도(사53장)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십자가를 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내심 큰 혼란에 빠져있었다.

- 더욱이, 십자가는 예수님의 것만 아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열두 제자로서 세상에서 영광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니...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그 결론은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죽어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들의 생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②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임

- 복음은 거칠고 과격하다. 구원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얻는다. 다른 길이 없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나아와 나의 죄를 회개한 사람을 죄용서 하신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 죽음의 형벌을 당한 것으로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는 반드시 십자가를 거쳐야 한다. 하나님 나라 구원은 십자가에서 시작되고 십자가 때문에 얻는다. 십자가 자기죽음이 없다면 구원은 없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들이다.

- 마7:13-16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2) 예수님 모습이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심히 희어지셨다.

① 변화산에 오르사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되심

- 십자가 말씀에 놀라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변화산으로 데려가 십자가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보여주셨다. 로마카톨릭은 예수님이 다볼산에서 변화되셨다고 하지만 우리는 헐몬산으로 본다. 거리적으로 다볼산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에 있고 헐몬산은 가이사랴 빌립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높은 산으로 가셨다는 것도 근거가 된다. 다볼산은 해발 589m의 작고 낮은 산이지만, 헐몬산은 백두산 높이의 2840m나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헐몬산 꼭대기에 오르셨을 수도 있고, 헐몬산의 작은 여러 봉우리 중 어느 하나에 오르셨을 수도 있다. 거기서 희고 광채 나는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되심으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본질을 직접 보여주신다. 십자가는 차갑고 거칠지만 그 본질은 광채 나는 영광의 부활이다.

- 예수님의 광채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의 본래 모습이었고 부활하실 예수님의 실재모습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부활하실 모습을 변화산에서 미리 보여주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지만 사흘 만에 영광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실 것이다.

- 예수님은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보이고 갈릴리 어부들을 데리고 다니셨지만 그분의 본질은 태초부터 계셨던 성삼위일체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따라 직접 창조를 실행하신 로고스(말씀)로서의 창조자요 창조중보자셨고,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나타나시고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과 성막계시를 직접 수여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계시중보자셨다. 예수님은 이사야에 의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하나님의 성호로 예언되었다(사9:6) 변화산에서 보여주신 희고 광채 나는 모습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본래 모습이다.

-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화는 우리들이 변화될 모습이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빛나는 부활의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된 죄가 없는 하나님 형상의 몸이다. 그것은 회복 완성된 새에덴,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우리의 완전하고 의롭고 거룩한 몸이다. 변화산의 예수님처럼, 성도들도 머지않아 다 영광스럽게 변화할 것이다.

- 빌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② 성령께서 우리를 영광의 몸으로 변화시켜 가심

-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우리가 얻을 영광의 광채 나는 몸은 전혀 새로운 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에서 아담의 몸이다. 물론 에덴의 첫아담과 부활이후에 우리 몸은 다른 점이 있다. 첫아담은 범죄하면 상실되는 조건적 영광의 몸이었지만, 부활이후 우리는 조건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부활을 이루셨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은 결코 상실되지 않는다. 조건적 무조건적인 차이만 있을 뿐 에덴의 아담과 부활후의 우리 몸은 동일하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 하나님 형상의 핵심은 성령이다. 성령께서 아담 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고 아담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다. 성령은 물리적 존재 아담을 영이신 하나님과 연합시킨다. 마치 예수님이 성부하나님과 단 한순간도 분리되지 않는 성자하나님이심이 성령 때문인 것처럼 에덴의 아담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이신 하나님과 단 한순간도 분리되지 않는 거룩한 피조물이었다. 성령충만은 다른 피조물과 구분된 사람창조의 핵심원리이며 새하늘과 새땅에서 살아갈 부활의 광채 나는 모습도 그러하다. 성령충만은 이 땅에서 주어진 한시적인 것이 아니다. 성령충만은 아담이 상실했던 첫에덴과 그리스도께서 회복하신 새에덴의 핵심원리이다.

- 성령은 구원의 보증이다. 성령은 우리가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새하늘과 새땅에서 살게 될 것을 확증한다.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은 첫 창조의 회복과 완성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심은 미래에 완성될 부활생명 구원의 유일한 보증이 된다.

- 성령 받은 사람은 죄에 대하여 죽고(mortification) 의에 대하여 살게(vivification) 되어있다. 이것을 윤리행위로만 생각하며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젊었을 때보다 나이가 들면 성숙해지고 어느 정도 도덕적인 죄를 덜 짓게 되기 때문이다. 실재 내면까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표면적으로 또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그렇다. 이는 성령이 없어도 그렇다. 불신자의 성숙된 인격은 성령의 능력이 아니다. 그러므로 윤리적 죄로 생각하면 성령의 역사는 잘 보이지 않는다.

- 성령은 점점 우리에게 죄인의 형상을 없어지고(mortification)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도록(vivification) 하신다. 내가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갈4:19). 내가 점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광채 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것이다. 물론 사는 동안 이런 변화는 부활의 완성된 모습 근처에도 못가지만 우리가 부활의 그 모습 쪽으로 나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성령 받은 사람은 반드시 이렇게 된다. 이런 변화는 내 노력에 달려있기 성령의 유무에 달려있다. 성령 받으면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거룩해지려 한다. 이렇게 살아야 성령 받은 것이란 말은 처음부터 틀렸다. 성령은 우리에게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겔36:25-28) 성령 받으면 이렇게 살아지게 된다. 이런 삶이 없다면 성령이 내주하시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옛언약과 다른 새언약의 특징이다.

③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눔

- 모세는 예수님보다 1400년 전, 엘리야는 800년 전의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동시에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을 성취 완성시켰음을 말해준다.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고 이는 유대인들에게 오경(토라) 선지서(네비임) 성문서(케투빔)으로 구성된 구약성경(타나크) 전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은 무엇인가?

- 모세와 엘리야는 그들 자체로서 예수님을 예표한다.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성막계시를 전달해주고 광야 40년을 인도했다. 모세는 계시중보자, 구원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하겠다. 엘리야는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야는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하겠다. 이것 말고 사역으로서 모세와 엘리야의 연결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을 하나로 연결하는가? 언약이다. 모세는 언약의 시작, 엘리야는 언약의 보존, 예수님은 언약을 완성하셨다.

-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약속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겠다는 약속이다. 이것은 하나의 구절로 요약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의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레26:11-12) 이는 구약성경(출6:7,겔37:27)과 신약성경(고후6:18,계21:7)에 계속 반복된다.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에게 최종 완성된다.

- 모세는 언약백성을 탄생시킨 선지자이다. 모세는 백성들을 모으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과 성막계시를 낭송한다. 백성은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겠다고 맹세한다. 모세는 백성의 대표들에게 희생제물의 피를 뿌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과 성막계시의 분량과 내용의 세밀함을 보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다르고 사무엘 다윗과도 다르다. 4명의 대선지자와 12명의 소선지자와도 다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모세에게 만큼 정확하고 분명하게 계시하여 주신 적이 없다. 이는 모세 개인의 우월성 보다는 언약백성을 탄생시켜야할 구속사적 사역 때문이다.

- 민12:6-8 “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 신34:12-14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 엘리야는 언약이 파기되는 구속사의 최대위기 속에 하나님 나라 언약을 지켜낸 선지자였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을 강대하게 하기 위해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는다. 이세벨은 바알우상을 국가종교로 공인하고 이스라엘 전역에 바알종교를 퍼트린다. 이로서 백성들은 공개적으로 바알과 아세라 섬기는 것을 꺼리지 않게 되었다. 엘리야는 이것을 막아낸 특별한 선지자였다. 갈멜산 사건이후, 바알우상은 더 이상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동등시 될 수 없었다. 이후에도 백성은 여전히 바알을 섬겼지만 그것은 개인신앙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엘리야 이후 바알은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비견되는 신이 될 수 없었다.

- 왕상19:10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 사역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성취완성 되었다. 예수님은 성찬의 포도주로 새언약을 채결하신다. 이는 옛언약과 단절된 또 다른 언약을 맺음이 아니다. 새언약은 옛언약을 성취하고 완성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짐승의 피를 뿌리지 않고, 당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시게 하셨다.

<결론 및 적용>십자가는 죽음처럼 보이나 실재는 영광의 부활이다.

(1) 십자가의 문으로 들어가지만 도착한 곳은 부활과 성령강림이다.

(2) 부활의 영광이 없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니다. 기독교는 금욕주의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