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말라기(2) -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 (말4:1-6)

Author
GOSPEL323
Date
2024-02-1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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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2) -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 (4:1-6)

1. 말라기 31

(1) 주께서 성전에 임하신다.

- 말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 건물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상징물이었다. 솔로몬 성전의 파괴는 출애굽 구원으로 세운 하나님 나라가 무너짐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제2의 출애굽 곧 출바벨론 구원을 주시며 다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다. 그때 새언약을 주신다.

- 새언약과 옛언약과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되는 동일한 언약이나 그 방식이 다르다. 옛언약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율법을 지키는 방식이며, 새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법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옛언약은 사람을 거룩하게 하지 못한다. 짐승의 피로는 영원한 속죄가 없으며 의롭다하심도 없기 때문이다. 새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고 성령내주로 죄인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므로 거룩하게 변화시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언약은 옛언약의 성취이고, 실체이며, 완성이다.

- 스룹바벨 성전은 새언약의 그리스도를 예표로 세워졌다. 그 안에서 드려지는 제사나 십일조 모두 그렇다. 백성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볼 때 초라하고 매력이 없다. 제사드려도 무슨 신비한 응답이 올 것 같지도 않다. 백성들의 신앙은 다시 식어져 갔다. 하나님께서 율법과 성전규례를 통해주신 하나님 나라 언약이 희미해진다. 새언약의 성령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신앙이 없어져간다. 학개 스가랴 때 스룹바벨 성전이 다시 세워진지 약 100년이 지난 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약 400년 전의 일이다.

- 이때 말라기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한다. “여호와의 날에 너희가 기다리는 주님 곧 새언약의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전에 임하실 것이다.” 건물성전은 하나님의 왕되심과 그의 백성됨을 위한 구원의 길을 계시하고 예표한다. 언약이 희미해져 갈 때 말라기는 백성들에게 그의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예언했다.

(2)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오심은 한 가지 중요한 증표가 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가 먼저 온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사자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예언한다. 그가 외치는 내용은 새언약의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그리스도 주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오심을 모든 사람이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엘리야요 곧 세례요한이다.

- 사40:3-5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3) 왜 엘리야인가?

- 엘리야 선지자는 다윗과 솔로몬이 죽고 약 60년이 지난 후, 북이스라엘 아합과 남유다의 여호사밧때 활동했다. 이때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여호와 종교가 중단되고 바알종교로 뒤바뀌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하나님 나라 언약이 중단될 뻔한 구속사의 큰 위기의 때였다.

- 솔로몬 이후 60년 동안 북이스라엘에는 세 번의 왕위찬탈이 있었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크게 혼란했다는 말이다. 여로보암이 22년 통치했으나 그 아들 나답은 2년 만에 바아사에게 죽는다. 바아사는 24년 통치했으나 그 아들 엘라도 2년 만에 시므리에게 죽는다. 시므리는 6개월 만에 오므리에 의해 죽고 북이스라엘은 오므리 아합왕조 4대 48년이 시작된다. 오므리는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고 12년을 통치한다.

- 아합은 오므리의 통치를 기반으로 북이스라엘을 정치 경제 외교 군사면에서 대단히 강력하게 만들었다. 아합때 북이스라엘은 모든 면에서 남유다를 압도했다. 아합보다 2년뒤에 즉위한 여호사밧은 아합과 결혼동맹을 맺고 아합의 풍요와 번영을 받아들였다. 아합은 세상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세운 왕이었다. 그러나 아합은 성경에서 가장 악한 왕이다. 그는 풍요를 얻기 위해 북이스라엘에 바알신앙을 받아들였다. 아합은 시돈(페니키아)과 무역하기 위해 바알제사장인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고 결혼 화친동맹을 맺는다. 이세벨은 시돈의 사치와 향락을 무기로 북이스라엘에 바알종교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세벨은 요한계시록의 음녀 바벨론이었다.

- 모세와 여호수아 때, 사사시대에도 가나안에는 바알이 있었다. 요단강 건너기 직전 발람의 바알브올 사건이 그것이며, 여호수아의 가나안 진멸전쟁도 그 이유였다. 바알우상은 처음부터 가나안에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우상을 섬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으로 몰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주된 종교는 율법과 성막제사에 근거한 여호와 신앙이었다. 백성은 여호와를 섬기되 마음으로는 바알산당에도 기웃거리는 것이다.

- 아합시대는 다르다. 바알종교는 북이스라엘의 공식 국가종교가 되었다. 백성들은 바알이 주는 풍요와 향락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기기 시작한다. 남유다 여호사밧도 경건한 왕이나 북이스라엘과 화친을 위해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맞아들인다. 아달랴로 인해 남유다도 바알종교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이 바알우상의 나라로 뒤바뀌는 구속사 중단의 그런 위기의 시대였던 것이다.

-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 이세벨과 바알을 무너뜨리고 백성의 마음을 바알에게서 여호와께로 돌이키게 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아합에게 기근을 선포한다. 바알이 비를 내려주는 신인데 삼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다. 비는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려주는 것임을 보여줌이다. 갈멜산 제단에 불을 내려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준 것도 엘리야였다. 엘리야의 기도로 그쳤던 비가 삼년 만에 다시 내린다. 천둥과 번개의 신 바알은 불을 내리지 하고 비도 내리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셨고 비도 내리셨다. 갈멜산 이후 바알은 이스라엘의 공식종교가 되지 못하고 민간 무속신앙으로 전락된다. 바알은 비도 불(천둥번개)도 내리지 못하는 거짓우상임을 백성이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

- 왕상18:20-21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

(1) 세례요한의 중요성

- 구약의 (문서)선지자는 주로 이스라엘 멸망기를 배경으로 한다. 아담이후 성경의 주요인물들이 모두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한 선지자이지만 우리가 구약 선지자라고 부르는 것은 주로 16명의 문서선지자들이다. 그들은 제2의 출애굽 곧 출바벨론 배경 속에서 여호와의 날, 그리스도와 성령강림 신약교회, 새이스라엘, 새언약, 새성전, 새하늘과 새땅을 예언하고 있다.

- 세례요한은 말라기 이후 신구약 중간기 400년 뒤에 등장한 선지자이다. 이 기간은 마치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후손들이 약 400년간 긴 세월을 보낸 것과 같다. 그 기간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떠한 선지자도 보내지 않으셨으나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었고,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전파를 위해 준비되어갔다, 하나님의 침묵은 구약 이스라엘 나라(애굽노예400년)와 신약교회(신구약중간기400년)를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세계역사를 진행하심이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의 사명으로 탄생했다. 그 사명은 천사가 직접 잉태소식을 전하고 이름까지 지어줄 만큼 특별했다. 성경에서 이런 출생은 이삭과 세례요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는 구약 마지막 선지자로서 자기 이전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새언약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시라고 백성들 앞에서 직접 선포하는 사명이었다.

- 세례요한은 구약에서 가장 큰 자였다. 그는 모든 구약선지자들이 보기를 바라던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본 선지자라는 것이다. 구약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스도를 예언했지만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지는 못했다. 아브라함도(요8:56) 모세도(신18:15) 다윗도(시110:1) 모두 그랬다. 세례요한은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고 만났고 직접 대화를 나눴으며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를 직접 소개한 선지자였다. 이런 면에서 그는 구약 모든 선지자들보다 크다. 그의 탄생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하며 구약 선지자들의 종결과 구약 예언의 성취를 의미한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 말라기의 예언대로 세례요한은 엘리야처럼 백성들의 마음을 죄에서 돌이켜(회개)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도록 사역했다. 그는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며 회개와 죄사함을 선포하고 주의 길을 예비했다. 요한의 물세례는 분명 에스겔 예언을 상징화 한 것이다. 새언약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새이스라엘이 회복될 때, 백성은 물로 정결케 하고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 겔36:25-28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세례요한의 물세례는 죄사함을 얻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사역을 예표하는 행위이다. 그의 물세례를 받았다고 죄가 사해짐은 아니다. 물세례는 회개와 정결을 나타내는 상징하는 행위예언일 뿐이다. 요한의 물세례는 백성들에게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할 뿐이다. 에스겔 예언에서 물로 씻고 성령으로 정결케 함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사역이다. 요한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함을 말하고(요3장) 바울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말했다(딛3장) 모두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령사역을 뜻한다.

- 요일5:5-8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 딛3:5-7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감히 예수님께 세례를 줄 수 없고 오히려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나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는 것이 의를 이루는 일이라 하셨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심이 어떻게 의를 이루는 일일까?

- 세례요한의 물세례는 죄인들이 받는 것이다. 죄인이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 정결케 됨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므로 물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고 사실 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당신께서 죄인으로 인정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물세례를 받으심으로 예수님께서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죄의 전가) 죄인으로 인정되셨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가해주시기 위함이었다(의의 전가)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먼저 우리 죄를 친히 담당하셨다(전가)

-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마3:17) 세례요한은 아버지와 어머니로 부터 예수님 소식을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었겠지만, 그는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물로 세례를 베풀때 하나님의 표징을 직접 보고 직접 듣는다. 그가 예수님을 증거한 것은 주변이나 부모님께 들은 내용이 아니라 그가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3)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이”

-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선언했다(요1:29) 이는 구약의 수많은 희생제사가 모두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의미함을 말한다. 세례요한은 구약에서 수없이 드려온 희생제사를 그리스도의 속죄제사 예표라고 완전히 결론 내린다. 이후로 구약제사에 대한 다른 해석은 있을 수 없다.

-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 아담언약과 노아언약은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는 동일한 언약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 노아언약에는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고 추가된다. 범죄 이후에는 반드시 속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레위기 희생제사는 피를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고기는 다 태울 수도 있고 제사장과 봉헌자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 하지만 피는 그렇지 못하다. 모든 피는 단 사면에 바르거나 뿌리거나 부어야 한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대속함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 세례요한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선포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니 나는 그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요1장) 요한은 자신의 물세례 사역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세례 사역의 예표라고 까지 말한다. 그는 모든 구약예언이 예수 그리스도께 성취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요1:26-32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결론 및 적용>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1)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을 베풀어서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구약 예언의 성취로 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수천년 구약 역사 속에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 구원의 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계시하셨다. 세례요한은 그 모든 구약 선지자들의 대표이다. 그가 구약 선지자의 대표로서 직접 백성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고 선포했다.

- 구약성경을 읽어야 한다. 구약은 이스라엘 역사나 교훈집이 아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교회를 예언하는 책이다. 구약은 신약의 빛으로 읽어야 한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회당에 가서 구약성경을 읽고 그 예언의 성취로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구약성경 없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루스드라에서는 제우스신으로 오해 받을 뿐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다. 구약성경 없이 철학논리 설교한 아테네에서도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다. 구약성경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하나님 나라 구원계시가 복음으로 선포된다.

- 다른복음이란 구약에 말하지 않는 새로운 예수를 만들어 가르치는 것이다. 구약에 근거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엉뚱한 하나님 나라를 주장하지 않는다. 시대정신에 따라 사람들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다른 복음, 다른 그리스도가 된다. 구약에서 예수님을 선포하고, 예수님에게서 구약을 설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