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아모스(2) -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암5:18-27)

Author
GOSPEL323
Date
2024-03-1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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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2) -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5:18-27)

1. 여로보암 2세의 번영기 마지막 회개의 기회

(1)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세우신 이유.

- 르호보암 때 다윗왕국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눠졌다. 노년에 솔로몬이 일천비빈을 두고 그녀들을 위해 감람산 남쪽기슭(멸망산)에 이방신들을 위한 산당을 세운 때문이었다. 성경은 그의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돌이켜 이방신들을 섬기게 만들었다고 기록했다(왕상11:1-13).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두 번이나 경고하셨고 세 번 째에는 나라를 나누어 네 신하에게 준다고 말씀하셨다. 그 신하가 바로 에브라임 사람 여로보암이었다.

-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 하나님은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를 보내 여로보암에게 네가 다윗의 길로 행하면 네 왕국을 견고케 하시겠다 말씀하신다. 마치 사무엘이 다윗을 찾아가 왕으로 기름 붓는 것과 동일하다. 단 여로보암 북이스라엘 왕국은 다윗과 같은 메시야의 언약은 없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나실 것이고,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를 경고하는 채찍으로 경쟁관계에 있다가 후에 남유다와 하나가 될 것이었다.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왕상11:39)

(2) 벧엘의 금송아지와 바알, 그리고 예후

- 북이스라엘은 처음부터 금송아지를 섬기기 시작했다. 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산당을 세우고 임의로 제사장을 세우고 절기를 만들어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윗의 길로 행하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론의 금송아지로 바꾼 것이다. 여기에 아합과 이세벨의 등장은 바알의 광풍을 북이스라엘 전역에 몰아치게 했고 여호사밧의 남유다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하나님은 이때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내 이스라엘을 지켜주셨다.

- 예후는 이세벨과 바알을 치는 여호와의 칼이었다. 그는 엘리사의 기름부음을 받고 헤렘전쟁을 시작한다. 그로인해 이세벨과 그녀의 아들 북이스라엘 여호람왕, 그녀의 외손자 남유다의 아하시야왕, 이세벨의 영향권 친족관계인 남북왕국의 왕자들 112명, 북이스라엘 전역에 모든 바알 아세라 제사장들은 완전히 멸절되었다. 예후는 여리고를 진멸(헤렘)한 여호수아처럼 이세벨과 바알제사장들을 완전히 헤렘(진멸)하였다. 하나님은 예후를 축복하셨다.

-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겠다(호1:4)는 호세아의 말씀은 예후가 너무 가혹하게 헤렘전쟁 수행을 말함이 아다. 그것은 예후와 그의 후손 왕들 곧 북이스라엘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따르지 않고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죄와 그에 따른 윤리적 타락을 말한다. 예후의 집이라고 말함은 호세아의 예언을 듣는 당시 북이스라엘 왕은 예후의 증손자 여로보암 2세이기 때문이다. 예후는 다윗 같은 성군이 아니다. 그는 바알을 쳐서 헤렘전쟁을 수행한 사람이다.

- 여로보암 2세는 예후의 증손자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큰 번영기를 주시며 북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올 마지막 기회를 주신다. 아모스(암1:1) 호세아(호1:1) 요나(왕하14:25)는 이때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들이다.

2.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1) 지도자들의 타락 – 빈부의 격차, 가난한 자들의 고통

- 암2:6-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 암3:9-10 “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암4:1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 암5:11-12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 암6:1-6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 암8: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 아모스는 심판의 책이다. 위로와 회복은 다윗의 장막 회복을 예언 하는 마지막 5구절(암9:11-15)밖에 없다. 아모스는 전체 9장 146절 중 대략 15절은 북이스라엘의 죄악상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나머지 126절은 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상세히 예언한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은 회개하는 자/남은 자를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목적한다.

- 아모스는 주로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죄악을 책망한다. 일반백성이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지도자들의 죄악이 크고 그들이 이스라엘을 죄와 불의의 나라가 되게 했음을 말함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로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 그 죄악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 첫째, 왕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하지 않았다(출23:6-8,신24:17). 그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를 죄와 불의의 나라로 타락시켰다. 사회적 공의가 없으므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해결 못하고 고통을 당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었다.

- 둘째, 그들은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객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지 않았다(출22:22,신10:18) 고대국가 농경사회에서 남편 없는 과부, 부모 없는 고아들은 살아가기 힘들었다. 하나님은 약자들을 위해 추수 때 곡식을 다 거두지 말라고 하신다. 약자들도 노동해서 곡식을 얻으므로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배려함이다.

- 여로보암 2세 때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러질 못했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갈취했다. 그들은 힘 없는 자를 학대하고 압제하며, 가난한 자들의 겉옷을 전당 잡아 그 위에 누었다. 그들은 약자들에게 세금을 받아 상아상에 눕고 양과 송아지를 먹고 포도주에 취했다. 고고학으로 확인된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왕궁에는 2백여개의 정교한 상아장식품들이 발굴되었고, 또한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집들은 그 크기가 다양했다. 빈부격차가 매우 컸음을 말하는 것이다.

- 셋째, 그들은 월삭과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되 마음은 다른데 가있다. 그들은 빨리 월삭과 안식일이 끝나서 곡식과 밀을 팔되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여서 팔고자 했다. 그들은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았다.

- 하나님은 그들의 절기와 성회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드리는 번제와 소제 살진 짐승의 화목제를 받지 않으셨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출애굽 구원의 여호와가 아닌 금송아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호와 구원계시를 금송아지 번영신학으로 믿었다. 그들은 성막과 율법의 그리스도 구원계시를 버리고 바알과 맘몬의 금송아지 번영신학을 가졌다. 이런 신앙의 사람들이 재판을 굽게 하고 가난한 자들의 돈을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다른 하나님을 섬긴다. 그들은 하나님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앗수르 사르곤 2세에게 붙여 멸망시키고 남은 자들을 구원하신다(BC722)

(2) 오늘 우리의 삶 – 불순종은 불신앙에서 온다.

- 우리는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처럼 백성을 재판할 일도 없고 가난한 자들의 옷을 빼앗거나 상아궁에서 포도주에 취하며 사치하며 살지 않는다. 우리는 금송아지 우상종교가 아닌 참된 계시 그리스도 구원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도 때때로 크고 작은 죄를 저지른다. 세상 법에 저촉될 만한 범죄행위가 아닌 우리 삶에서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죄들이다. 이러한 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하나님 앞에서 죄는 크고 작음이 없다. 모두 죽음에 해당한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죄들을 오늘 본문의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죄와 동일하게 해석하면 우리에게 바른 적용이 아닌 것 같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은 금송아지 이단신학의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 믿음에는 구원이 없다. 하나님을 금송아지 맘몬으로 바꾼 번영신학과 예수님을 민중혁명가, 윤리도덕선생으로 믿는 복음에는 구원이 없다. 그래서 성경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의 성령은 바른 말씀(=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엡1:13)이 전파될 때 역사하신다.

- 우리는 금성아지 번영신학이 아닌 십자가 바른신학과 그리스도 바른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못함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참된 성도가 매일의 삶에서 갈등하는 작은 불순종의 선택들에 대해 아모스의 무서운 책망과 심판예언을 어떻게 적용할까?

- 아담의 죄는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보다 먼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불신앙하는 데서 시작했다. 불순종보다 불신앙이 먼저이다. 사탄은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참으로(정말로) 동산 모든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고 하셨나” 묻는다. 사탄은 선악과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나 하와는 그가 선악과를 말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참으로(진짜)라는 말은 아닐 수 있다고 의심을 넣는 것이다. “에덴동산의 수많은 열매들 중에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이 네게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 금령을 주실 때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매우 엄중한 분위기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전달되었다. 아담은 그 내용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선악과 금령은 피조물 아담이 하나님 백성임을 유지하는 사랑의 계명이다. 선악과 금령은 따먹고 죽으라는 것이 아닌 따먹지 말고 생명을 누리라는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진실된 사랑이었다. 아담은 선악과 금령을 들으며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고 후에 하와에게 전달했다.

- 사탄은 하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먹지 말라 하신 것이 아니라 나를 피조물로 지배하려고 금하신 것이다. 선악과 금령은 하나님의 거짓말이다.” 하와는 사탄의 말을 듣고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선한 의도를 의심한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먹는다.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함이 먼저다. 불신앙이 불순종을 하게 한다..

- 성도의 삶은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감은 사랑의 하나님이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 신약교회, 부활과 생명, 천국과 지옥을 통해 구원하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오늘의 우리로 신앙생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근거가 된다. 우리의 불순종은 이 믿음이 없을 때 행해진다.

- 왜 우리가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복수하거나 원수 갚지 않으며, 교회를 섬기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자요 공급자임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대신 심판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심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풍랑 치는 바다 위를 걸어간다.

- 이런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아담처럼 하나님께 분리선언을 한다. 하나님이 내 주인이 아니고 내가 주인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가 판단하고 내가 계획하고 내가 준비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경험과 내 자원을 가지고 행동한다.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믿음으로 살지 않고 내가 판단한 대로 살아간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 내 인생의 운전대를 맡기지 못함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된 것이다. 구원받은 내가 말씀대로 살지 않는 죄(불순종)는 하나님을 불신앙하기 때문이다. 그게 죄의 본질이다.

<결론 및 적용>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있다.

(1)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나를 사랑하심을 믿자

-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다. 나또한 그러하다. 이때 우리는 행함으로 증명하라가 아니라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라고 말해야 한다. 믿어야 행할 수 있다. 칭의가 성화를 가져온다. 성화가 없는 것은 칭의가 없기 때문이다. 행함은 믿음에서 온다. 행함이 믿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행함을 만든다.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하라는 것 보다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라는 말이 먼저다.

- 구약의 수많은 사건 속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자. 복음을 믿자. 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구속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를 향한 하나님 사랑은 의심할 수 없다.

(2)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자.

- 내일 염려, 자녀 걱정, 돈으로 안심, 주일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