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아모스(3) - 다섯 환상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암7:7-17)

Author
GOSPEL323
Date
2024-03-17 16:16
Views
64

아모스(3) - 다섯 환상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7:7-17)

1. 북이스라엘의 범죄

(1) 심판의 다섯 환상 – 메뚜기 불, 다림줄, 여름과일, 벧엘산당 파괴

-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심판에 관한 다섯 개의 환상을 보이신다. 첫째 환상은 풀이 움돋기 시작할 때에 메뚜기 떼가 와서 먹어치운다. 아모스가 간구하며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찌 서리이까”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메뚜기 재앙을 멈추신다. 둘째 환상은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한다. 이번에도 아모스가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메뚜기 재앙을 멈추신다.

- 셋째 환상은 다림줄이다(7장). 하나님께서 담 곁에서 심판의 다림줄을 내리신 것이다. 다림줄과 맞지 않는 담은 구부러진 것이다. 건축자는 그 담을 헐고 무너뜨린다. 이 환상을 보고,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이 더 이상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의 집은 하나님의 법에서 너무도 빗나가 있었다. 하나님의 다림줄 앞에 아모스는 아무 간구도 못한다.

- 넷째 환상은 여름과일 한광주리이다(8장). 여름과일은 이스라엘 1년 농사의 끝 마무리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가을에 이른비가 내려 곡식농사가 시작되고 겨울우기때 곡식이 자라며 봄에 늦은비가 내려 보리와(초실절) 밀을(맥추절) 추수한다. 이스라엘 여름은 비가 전혀 없는 건기이다. 과일농사가 시작된다. 뜨거운 여름내내 과일농사 이루어지고 가을 초막절에 추수하여 1년 농사가 끝난다. 이처럼 여름과일은 1년 농사의 끝을 말한다.

- 또한 히브리어로 여름과일은 “카이츠”이고 끝은 “케츠”이다. 여름과일(카이츠)과 끝(케츠)의 히브리어 자음이 같다. 아모스는 여름과일을 보며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의 끝났음을 보여주심으로 알았다. 심판은 돌이킬 수 없다. 하나님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으신다. 오래 참으심은 끝났다.

- 다섯째 환상은 벧엘 산당이 무너져 백성들 머리위로 쏟아지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는 환상이다. 벧엘 산당/신전은 예루살렘 성전을 대치하는 북이스라엘의 성전이다. 하나님은 벧엘 금송아지 성전의 기둥을 흔들고 무너뜨리신다. 이 환상은 북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에게 엄청난 충격이다. 하나님께서 벧엘 금송아지 제단을 여호와의 성전으로 전혀 인정치 않으심이다. 왕과 제사장들이 가르치고 백성들이 열광하던 금송아지 신학은 거짓이었다.

- 이 환상은 여로보암 2세가 죽고 약 30년이 지나 정확히 성취된다. 북이스라엘은 BC740 앗수르 디글랏빌레셀 3세(Pul)의 침공을 받아 요단동편과 갈릴리 지역을 점령당하고(대상5:26) 후에 사르곤 2세에 침공을 받아 사마리아성이 함락됨으로 완전히 멸망한다(BC722). 이로서 이스라엘 10지파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2. 다섯 환상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1)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 아모스와 거짓선지자 아마샤(암7장) : 아마샤는 벧엘의 금송아지 대제사장이면서 왕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였다. 그는 아모스가 예언할 때 여로보암 2세에게 사람을 보낸다.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고 악담하며 예언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고 (북이스라엘)백성은 사로잡혀갈 것이라 말합니다.” 그는 아모스의 예언은 틀렸고 북이스라엘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아모스에게 북이스라엘을 떠나 네 나라(유다)로 돌아가라 협박한다(암7장). 벧엘의 대제사장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고 왕에게 자기 말을 전한 거짓선지자로서 얼마 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당한다.

- 암7:16-17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고하지 말라 하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가운데서 창녀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측량하여 나누어질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땅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 거짓 제사장과 거짓 선지자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아닌 자기가 만들어낸 말을 한다. 그들은 백성들이 무슨 말 듣고 싶어 하는지 잘 안다. 그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예언을 해준다. 그것은 거짓 예언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 미가야와 거짓선지자 시드기야(왕상22장) : 아합과 여호사밧이 아람과 싸우러 길르앗라못 전투에 나갈 때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거짓선지자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왕에게 나아와 “하나님께서 왕에게 이번 전투는 반드시 이긴다고 말씀하셨다” 한다. 하나님의 선지자, 미가야는 “길르앗라못 전투는 패할 것이고 아합 왕은 이번 전투에서 죽는다”고 예언한다. 거짓선지자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때렸고, 아합은 미가야를 잡아 옥에 가둔다. 아합은 변장하고 길르앗라못 전투에 참가했지만, 미가야의 예언대로 아람군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왕상22장).

- 예레미야와 거짓선지자 하나냐(렘28장) : 예레미야는 목에 멍에를 매고 다니며 남유다왕국은 바벨론에게 멸망한다고 시드기야왕과 백성들에게 예언한다. 거짓선지자 하나냐는 예레미야가 맨 멍에를 부러뜨리고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에게 빼앗긴 성전의 모든 기물을 2년 만에 회복해주신다고 예언한다(렘28:10). 예레미야는 하나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렘28:15-17)

- 참선지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거짓선지자들은 백성의 눈치를 살핀다. 정치인은 선거철만 되면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살피고 옳지 않을 일도 그들이 좋아하면 해준다. 포퓰리즘이다. 종교인도 다르지 않다. 그들도 신도들의 인기와 칭찬을 원한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 사람들의 여론이 더 중요하다.

(2) 성경에 기록된 구원계시를 설교하는 것이 예언이다.

- 성경은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계시)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직접 음성으로나, 천사를 통해서, 꿈과 환상으로 당신의 뜻을 계시해주셨다. 환상과 꿈은 동일하다. 자다가 보면 꿈, 깨어 있다가 보면 환상이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진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계시이다. 예언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 구원계시를 백성들에게 알리 것이다. 내 운명을 알아맞히는 점쟁이 족집게 미래예언이 아니다.

- 신약에도 환상과 선지자가 있었다. 사도들은 자기가 보았던 환상을 기록했고, 사도행전에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에게 유대로부터 온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가 예언해준다. 또 빌립집사의 딸들도 예언하는 자였다(행21장) 바울은 교회의 직분을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라 했다(엡4장) 신약의 예언자 선지자들은 성경이 기록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활동했다. 사도들만으로는 모든 지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잠시 선지자들을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은 구속계시를 모두 담은 성경이 기록된 후 예언과 꿈, 환상 모두 종결되었다. 성경 외에 하나님의 또 다른 계시는 없다.

- 요셉의 꿈은 야곱의 열두지파가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번성하는 구속사의 꿈이다. 다니엘이 본 네 나라 짐승 환상(단7장), 수양과 수염소 환상(단8장), 70이레 계시(단9징) 북방왕 남방왕 환상(단10-11장)은 인류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와 신약교회,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알려주는 구속계시이다. 스가랴의 여덟 환상, 아모스의 다섯 환상... 베드로가 본 보자기 환상(행 10장) 바울이 본 셋째 하늘 낙원계시(고후12장) 사도요한이 보았던 요한계시록의 여러 환상들도 모두 그리스도 구속계시이다.

- 하나님은 구속사의 점진적 발전에 따라 선지자들에게 한 단계씩 계시하셨고 그들은 그 계시를 예언하였다. 아브라함은 모세의 율법과 성막계시를 몰랐고, 모세는 다윗의 왕국계시를 몰랐다. 다윗은 대소선지자들의 새하늘과 새땅(이사야) 새언약(예레미야) 새성전(에스겔) 그리스도와 신약교회 하나님 나라 완성(다니엘) 이스라엘 회복(모든 선지자들) 계시를 몰랐다. 세례요한은 구약 모든 선지자들이 기다리던 구속계시의 실체인 예수님을 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세우신 신약교회를 보지 못했다. 사도들은 구약예언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 그리스도와 신약교회의 증인으로 세움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내용을 성경에 기록케 하시고 예언을 종결하셨다. 이제 더 이상의 선지자도 없고 예언도 없다.

- 이 시대의 예언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나라 구원을 성도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개혁교회는 목회자의 설교를 예언의 은사로 분류한다. 성경에 없는 새로운 계시를 말함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나라 구원을 계속 전하는 것이다. 참 선지자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 목사가 하나님 나라 구원을 설교(예언)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설교를 듣는 교인들의 반응 때문이다. 많은 교인들은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설교를 듣고 싶어 한다. 하나님 나라 구원 같은 거대담론 설교는 자기 문제와 너무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목사가 하나님 나라를 교인들의 말로 쉽게 설교해야 함이 핵심이겠지만, 하나님 나라 구원 속에 자기 문제가 다 들어있다는 것을 교인들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을 알기도 전에 교인들은 몇 번 듣고 자기와 안 맞다고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3) 아모스의 공의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 그리스도의 구원계시, 십자가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칭의와 성화로 집약될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기 전 유월절 만찬을 성만찬으로 바꾸시며 마지막 말씀(강화)을 하신다. 성만찬 강화(Discourse)에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과 예수님의 구원방법 등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펼쳐 오신 하나님 나라 구원계시의 완성과 그것을 이루는 예수님의 그리스도 사역 전부가 집약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성부 하나님과의 연합되는 것이다. 이는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 사람을 창조하신 원리이며 에덴에서 아담이 살아가던 모습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성삼위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신약의 표현으로는 성삼위 하나님과의 연합되었다.

- 요14:10-2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0절)...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20절).”

- 요17:21-23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말씀인지 다가오지 않는다.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계신다(14:10).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있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14:20)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되어 우리가 하나 되어 예수님과 아버지 안에 있다(17:21).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고 아버지는 예수님은 안에 있어 우리가 온전함을 이룬다(17:23)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예수님 말씀은 쉬운 것 같은데 어렵고, 어려운 것 같은데 쉽다.

-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 요16:7-8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요16:13-15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 예수님이 아버지와 연합되고 우리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된다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을 말씀하심이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고 성부하나님과 연합시킨다. 거듭 말하지만 사람이 신이 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본래 피조물의 모습을 회복함이다.

-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일본질의 분리불가한 한 실체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99.99%가 아닌 100% 성부하나님과 동일본질의 성삼위 하나님이시며 또한 개별위격을 가지신 분이시다. 이런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다시 하나님 백성되는 구원 사역을 시작하셨다. 첫아담은 범죄함으로 성령이 떠났고 육체가 되었다. 둘째아담 예수는 죄인인 우리를 정결케 하여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이로 인해 죄인은 다시 본래 아담의 모습을 회복하고 부활의 때에 완성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성령을 부어주시기 전에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는 것이다. 죄인은 십자가가 없이는 거룩의 영을 받을 수 없다. 죄인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을 때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 요14:11-14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 요15:7-16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7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16절)”

- 요16:23-26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23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24절)...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26절)”

- 예수님은 기도응답을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되어 본래 아담의 모습을 회복한 증거로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행하신 모든 말과 기적들이 당신과 연합하신 아버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 하셨다. 기적은 죄로 인한 사망과 결핍이 있는 이 땅에나 필요한 것이다. 에덴과 천국에는 망가짐과 부족함이 없다. 기적이 필요 없다. 첫아담은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이 오늘 우리 기준으로 본다면 기적이다. 각 짐승의 이름을 짓는 그의 지적능력... 에덴의 환경과 사물은 아담이 손을 대서 고쳐야 할 것이 없다. 기적이 필요 없다.

- 예수님의 기적은 당신께서 에덴을 회복 완성하러 오시는 둘째 아담이신 증표였다.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육체로 오셔서 성령충만의 방법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연합되셨다. 그분 자신이 성삼위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 성령충만의 방법을 통하지 않으셔도 됐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은 옛아담의 후손인 우리를 새아담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만드시려는 목적이었기에 성령충만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죄인을 성령충만한 본래 아담의 모습으로 회복 완성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시며 아버지와 연합된 자신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주신다. “내게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17:22) 첫아담의 후손인 우리가 둘째 아담 그리스도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이것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그 증거가 기도응답이다. 우리가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응답해주신다. 예수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과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기도함을 뜻한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으면 기도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수 이름은 그런 의미이다.

- 무엇이든지 기도하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내가 불가능해 보이는 무슨 일이든지 뜻하고(요14:12) 또 내가 하나님께 묻고 싶은 무엇이든지도 말한다(요16:23)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든지 불가능한 일을 기도하고 응답 받는가? 믿음으로는 아멘이지만 현실에서는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응답이 안될 것을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도이전에 성령충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아버지와의 연합(동행)이 먼저임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 성령충만으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내 뜻이 없어지고 아버지의 뜻만을 구한다. 그가 아버지를 위해 일을 결정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일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인가를 묻는다. 어떤 일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할 때, 죄인인 우리가 죄가 없으신 예수님처럼 100% 아버지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전심으로 구하면 알게 된다. 그 일이 아버지의 뜻이 분명하다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하는 것이다. 예수이름으로 기도함이 그 뜻이다. 무엇이든지 응답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충만한 자는 자기 뜻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한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일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냐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시지 내가 판단하지 않음을 명심하라.

- 이 모든 말씀을 하시며 제자들에게 새계명을 주신다. “서로 사랑하라“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되고 하나님께 직접 기도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이 된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아담의 후손 새사람이며, 이는 성령충만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의미이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서“(고전15:22) ”그리스도와의 연합“(롬6:5)이라 말하고, 예수님은 포도나무로 비유하셨다.

-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 말고 누구를 거쳐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는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 중보자는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개별적으로 직접 하나님을 만난다. 천국에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직접 섬기고 사람 사이에 우열이 없다. 이 땅에서 시간의 순서로 생겨난 나이 질서도 무의미하게 된다. 모두가 서로 사랑하며 서로 존중하며 서로 섬기는 완전한 인격체가 된다.

- 이 땅의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님을 조금 더 먼저 아는 자와 조금 늦게 아는 자가 생긴다. 구원받은 시간차이나 영적성장의 차이 때문이다. 이때 성도는 교회 안에서 서로 높다고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새계명이다. 이방종교는 많이 알고 먼저 아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무당은 서로 자기가 섬기는 신이 가장 큰 신이라 자랑한다. 하나님 나라 교회는 전혀 다르다. 본질적으로 절대 그럴 수가 없다.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더 많이 체험하면 할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간다. 이것이 그리스도 구원을 받은 성도의 모습이다.

<결론 및 적용>참된 구원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1) 성령충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알게 하옵소서

(2)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