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부활과 생명의 성령 (요20:19-23)

Author
GOSPEL323
Date
2024-03-3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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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생명의 성령 (20:19-23)

1. 그리스도의 부활

-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위에 세워져 있다. 특히 부활이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한 순간에 무너진다. 우리가 죄용서 받은 증거, 구원받고 하나님 백성 된 증거,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증거... 모든 것은 예수님이 성삼위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시기에 얻게 되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증거가 무엇일까?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지 못하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부활이다. 어떤 사람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사망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셨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고 십자가가 우리 죄를 위한 대속제사였음을 확증한다. 성령강림은 부활에 근거하여 주셨다.

- 부활하신 그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으로 세상을 구원하게 하심이다. 생명의 성령이셨다.

2. 부활과 생명의 성령

(1)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 예수님은 공생애 처음부터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당신의 사도로 삼으셨다. 사도는 예수님이 직접 세상으로 파송하신 당신의 증인이요 대리자로서 예수의 사시는 동안 하신 말씀과 행하신 사건을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도는 예수께서 성만찬과 안식 후 첫날(=부활하신 그날) 저녁 때 말씀하신 그 성령을 받은 증인이요, 그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대리자가 된 사도이다.

- 예수님은 골고다 직전 성만찬에서 성령을 말씀하시고, 부활하신 그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다시 성령을 말씀하신다. 즉 성령께서 오실 것이고 성령을 받아야 함이다. 예수님은 그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명확히 말씀하셨다.

- 첫째, 보혜사로서 진리의 성령이시다. 보혜사의 헬라어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곁에 계시며 도와주시는 분”이란 뜻이다. 변호사, 조력자, 위로자, 상담자, 보호해주시고(보), 은혜주시고(혜) 가르쳐주시는 분(사)... 으로 의역하지만 핵심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예수님이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다. 내 곁에서 함께하시며 나를 도우시는 진리의 성령이시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 곧 죄인을 거룩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진리를 가르치신다(요17:17). 바울은 이것을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깨닫게 하신다고 했다(엡1:13) 구원은 복음진리를 들을 때 진리의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 문을 여셔서 죄인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을 때 성령내주를 받아 얻는다.

- 둘째, 생명의 성령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이는 성삼위하나님의 제2위격으로 로고스셨던 창조중보자요, 창조실행자이신 예수님께서 창조때 아담에게 하신 그 일을 재현하심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모셔야 생영이 된다. 살아있음은 오늘날 같은 죄의 육체가 천년만년의 긴 수명을 가짐이 아니다. 첫사람(아담)에게 주신 생명은 사람이 성령을 받아 영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성삼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이를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라 하셨고(요17:21) 바울은 이것을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 했다. 사람은 성령을 받아야 본래 사람을 창조하신 모습으로 돌아간다. 진리의 성령은 복음이 선포될 때 죄인이 그 진리를 깨닫게 곁에서 도와주심으로 생명을 주신다.

(2) 너희가 뉘 죄를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요20:23)

- 요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 모든 사람은 자기의 허물과 죄로 인해 죄인이고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연합,생명)이 단절되고 죽었다(사망) 사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함은 죄 때문이다. 죄는 첫아담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고자 했던 그 것이다. 그 죄가 내 인격 속에 부패한 죄의 본성으로 내재되어 있다. 이 죄(=원죄)가 나로 하여금 여러 상황 속에서 죄들(자범죄)을 짓게 만든다. 이는 사람의 본성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아무도 죄를 제거하거나 극복할 수 없다.

-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에게서 이 죄책(형벌)을 대신 짊어지사 하나님께 죄용서 받게 하시고 또한 그리스도의 몸에 죄를 정하사(롬8:3) 곧 사람을 지배하던 죄의 세력/권세를 완전히 무력화 시킴으로 죄가 다시는 사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십자가 죄사함으로 정결케 된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죄인을 의롭다하심이다(칭의).

- 이러한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 우리 모두에게 위임되었다(마28:18-20). 우리가 가서 복음을 전하면 진리의 성령께서 죄인들의 눈을 열어 복음을 받게 하신다. 회개하고 주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는다. 그때 그들의 죄가 사해지고 칭의를 얻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받은 우리를 통해 그대로 재현된다. 이것이 우리가 누구의 죄를 사하면 사해진다는 것이다.

- 이 본문에서, 어떤 신학자도 우리가 직접 죄인의 죄를 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죄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 사하실 수 있다(막2장) 우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전하셨던 구원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이다.

-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구원사역을 대리해도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 개인에게는 절대로 죄사함의 권세가 없다. 죄사함은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만 있다. 예수님 이외의 그 어떤 사람도, 그가 바울이건 베드로건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죄사함을 주거나 성령을 보낼 수도 없다. 우리가 하는 것은 그들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것이고 이를 통해 죄인이 복음진리를 듣고 회개하여 죄사함 받고 성령 받아 구원 얻는 것이다. 이것을 너희가 뉘 죄를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란 의미이다.

- 여기서 핵심은 예수님은 제자들을 당신께서 하셨던 일을 하도록 세상으로 보내셨다(요20:21) 곧 죄인을 회개시켜 죄사함을 얻게 하는 일을 하도록 사도와 제자들, 곧 우리들을 파송하심이다. 죄사함을 주시던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는데 사도들을 통해 죄사함이 벌어지고 구원이 임한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되어 본래인간으로서 하나님과 바른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둘째/마지막/새로운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모습과 동일하다. 우리는 새로운 아담에 속한 자 곧 새사람으로서 성령 안에서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기도한다. .

-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기도하는 것이다. 공생애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엇이든 묻고 필요한 것을 구했고, 예수님은 그것을 아버지께 아뢰고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성령을 파송해주신 후 이제 우리는 무엇이든지 예수이름으로 직접 아버지께 구한다. 마치 예수님처럼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구한다. 새로운 아담 예수님처럼 우리도 성령내주(충만)으로 하나님과 연합된 본래 사람/새사람의 모습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3)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눅24:47) 생명 얻는 회개(행11:18)

- 눅24:45-48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 행2:33-40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 행11:15-18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 요한은 부활하신 그날 저녁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성령을 받을 것과 너희가 뉘죄를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라는 죄사함에 관해서 말씀하셨음을 기록한다. 누가는 그 이후 내용을 기록하며 예수님의 그 말씀을 자세히 알려준다. 하나님/예수님의 호흡(창2:7) 곧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생명을 얻게 되고 그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게 된다. 제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직접 수여함이 아니다. 생명은 성삼위 하나님이신 예수님만 수여하신다. 예수님만 생명의 성령을 파송하시고, 부어주신다. 제자들은 생명 얻는 길/구원의 길을 소개할 때(전도) 하늘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전도를 받은 그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진리의 성령) 생명을 얻게 하신다(생명의 성령) 곧 성령을 부어주신다.

- 본래 사람은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창조되었다. 구원은 죄인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됨이다. 성령은 죄인을 거룩케 하신다. 거룩해야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을 거룩의 영, 성결의 영이라 부르신 이유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연합)하는 삶의 핵심이 거룩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생명을 얻는 길은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믿음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그 이름을 인하여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부터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셨다(눅24:47) 이는 스가랴의 예언을 말씀하심이다(슥12-13장) 제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직접 수여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복음을 전파했고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회개시켜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 얻게 하신 것이다.

-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는 이 사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베드로는 요엘2:28절과 시16:10절, 시110:1절을 인용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사 만유의 주님으로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음을 증거 한다. 이 생명을 받으려면 너희 죄를 회개하고 예수 이름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할 때도 동일했다(사마리아 오순절). 빌립집사의 복음전도를 받고 귀신이 떠나가고 질병이 치유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 각 개인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으셨다.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했다. 왜 그랬을까? 빌립집사는 치유은사 집회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이다(행8:5). 빌립이 복음을 부족하게 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마리아에는 빌립이 전한 복음 내용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왜 성령이 임하지 않고 베드로가 와서 안수하니 그제야 성령이 임하셨을까?

-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지역감정을 넘어 멸시와 증오의 대상이다. 이런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졌고 빌립집사에 의해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에서 인정하기 어렵다. 공식적으로 인정해도 마음속으로는 사도가 아닌 집사에 의해 성령 받은 곳이라 무시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보내 사마리아에 임한 성령도 예루살렘과 동일함을 보여주심이다.

- 이방인 고넬료에게 임한 성령도 동일하다. 베드로는 이방인이 부정하다고 거부했지만 성령께서 보자기 환상을 보이시며 이방인 고넬료에게 가라고 하셨다. 베드로가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임하신 것과 같이 동일하게 임하셨다(이방인의 오순절) 베드로가 보자기 환상과 고넬료에게 성령임함을 직접 체험하고 확인했기에 예루살렘교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도 동일하게 성령이 임하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행11:18).

- 만약 사마리아와 고넬료에게 베드로가 가지 않았다면, 예루살렘 교회는 사마리아와 이방인에게 성령 임함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을 해도 자신들보다는 급이 다르다고 우월의식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베드로의 역할을 그것이다. 베드로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모든 곳이 베드로에 의해 동일하게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에,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특권의식과 자존심...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결론 및 적용>그리스도께서 주신 부활생명을 맛보며

(1) 십자가로 말미암아 생명의 성령을 받았다.

(2) 성령의 능력으로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점점 나타남을 체험하자(거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