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아모스(4) - 다윗의 장막과 그리스도의 교회 (암9:11-15)

Author
GOSPEL323
Date
2024-04-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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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4) - 다윗의 장막과 그리스도의 교회 (9:11-15)

1. 아모스 예언

(1) 주변나라들과 북이스라엘의 죄악심판(1-2장)

(2) 너희는 들으라(3장) 바산의 암소들아(4장)

(3) 아모스의 애가(5-6장)

(4) 다섯 환상과 다윗의 장막(7-9장)

2. 다윗의 장막과 그리스도의 교회

(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 암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아모스는 웃시야(남)와 여로보암 2세(북)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이다. 그는 북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예언을 선포했고, 그 예언을 기록하여 남유다 백성들이 읽게 하였다. 호세아 요나도 그렇다. 청중은 북이스라엘이나 독자는 남유다이다. 아모스 1장에 유다왕 웃시야 시대를 언급함이 근거이다. 히스기야 부흥운동은 이들 선지서의 글과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영향이 크다. 북이스라엘은 히스기야 6년에 멸망되고 히스기야와 남유다 백성들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는 아모스 예언성취를 생생하게 보았다.

- 아모스는 그의 선지서 마지막 5절을 이스라엘 회복 예언으로 마친다.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이 아닌 회복을 위함임을 보여준다. 그날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시고 에돔 곧 이스라엘의 가장 적대적인 원수국가에서도 하나님의 남은 자(택한 백성)이 돌아오고 만국에서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예언이다.

- 아모스가 예언한 웃시야 시대는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되기 약 2백년 전이다. 이때는 솔로몬 성전이 있고 그 안에서 최고의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다. 남유다 최고 번성기, 최고 경제력에 바탕한 고급스럽고 화려한 예배란 말이다.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 웃시야 이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한 이사야의 글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하나님이 화려한 솔로몬 성전에 마음이 없으셨다

- 사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 다윗의 장막은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의 범죄로 더럽혀진 실로의 성막을 버리심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궤를 블레셋 여러 도시들을 거쳐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약 70년, 웃사 사건으로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간 두셨다. 참고로 언약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간 있었다는 것은(삼상7:1-2) 언약궤가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간 때부터 사무엘이 선지자 사역을 시작한 때까지를 가리킨다. 언약궤를 빼앗긴 아벡 전투는 BC1075년에 있었고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간 것은 BC1003년 이후이다.

- 다윗은 왕이 된 후 예루살렘 다윗성에 다윗의 장막을 세운 후 여호와의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모셔온다. 다윗은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예배에 필요한 제사장, 찬양대, 등 모든 조직을 정비하고 다윗의 장막에서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은 이 예배를 받으셨다. 혹자는 다윗의 장막을 24시간 찬양과 기도 예배하는 특별한 처소와 단체로 적용하길 좋아하지만 지나친 해석이다. 다윗의 장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그의 나라 곧 신약교회이며 그 외에 다른 단체가 아니다. 이는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 야고보의 인용에서 확인된다.

(2) 야고보 –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차별 없이 구원

- 행15:16-17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 바울이 1차 선교여행(남갈라디아 지방)을 마친 후 안디옥으로 돌아가자 그곳에 예루살렘의 유대주의 거짓교사들이 들어와 이방인 교회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쳐 큰 혼란에 빠졌다. 갈라디아서는 이때 쓰여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렸다.(행15장)

- 예루살렘 교회 유대주의자들이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자 베드로는 보자기 환상과 고넬료 사건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똑같이 이방인에게도 믿을 때 성령을 주셨으므로 이방인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함은 불가하다고 말한다. 또한 바울과 바나바도 일어나 이방인들이 율법이 없어도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 믿는 사역현장을 간증한다. 이 모든 말을 들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이방인이 구원받고 있음은 바로 아모스 9장의 다윗의 장막 예언의 성취이니 그들에게 율법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자 모두 동의하고 신학논쟁이 끝난다.

- 야고보가 아모스가 예언한 다윗의 장막 예언이 성취됨 선언한 것을 보며 중요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시는 그날(여호와의 날)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초대교회가 탄생한 날이었다. 둘째, 다윗의 장막은 바로 신약교회이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다윗의 장막이 회복되지 않았고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할 그날을 기다리고 있지만 초대교회는 그날이 이미 도래했고 신약교회가 다윗의 장막이다라고 선언한다.

- 이는 교회 안에서도 다윗의 장막과 24시간 찬양 기도 예배를 지나치게 주장하는 분들에게도 해당된다. 다윗의 장막은 이미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세운 신약교회를 통해 성취되었다. 신약교회가 좀 더 예배를 회복하고 기도하자는 말은 충분히 수용되나 마치 교회가 아닌 새로운 단체가 나와야 한다는 식은 큰 문제가 된다. 신약교회가 다윗의 장막이다. 다른 새로운 것을 세우려고 해서는 안된다.

- 한국교회는 다윗의 장막을 예배갱신운동 정도로 받아들이는 교회가 있고, 그보다 더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신사도운동으로 받아들이는 교회가 있다. 신사도운동은 모세의 성막/성전과 다윗의 장막을 구분하고 그 차이를 의전적 짐승제사와 신령한 찬미제사로 나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신약의 예배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는 찬양제사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예배갱신운동이 아니다. 신사도운동은 직통계시, 예언 환상, 백투이스라엘 등 수 많은 신학적 문제를 가진 불건전 단체이다.

(2) 바울 – 그리스도의 교회는 죄없다하심(죄사함)과 의롭다하심(칭의)로 구원

- 행13:22-23 “...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이스라엘 구약역사를 출애굽 사무엘 다윗으로 요약하며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 하셨고 그 뜻은 다윗의 후손 이스라엘 왕으로 구주 예수님을 보내시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심이다. 참고로 스데반은 구약역사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까지 요약한다. 그 후 모세의 성막과 다윗의 성전건축 기도를 언급하며 성전과 율법을 그리스도로 해석 한다(행7장)

-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왕으로 보내 새 이스라엘 나라 곧 신약교회를 세우심이다. 그것이 다윗의 장막이다. 예수님은 다윗의 장막 곧 신약교회를 세우시는데 그 방법은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칭의)이었다.

- 행13:38-39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 첫째, 사람의 근본문제는 피조물이 창조주를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려하는 아담의 본성(원죄) 때문이다. 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을 떠나시므로, 사람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에덴에서의 아름다운 교제(동행, 연합)가 깨지고 단절되었다(창6:3,육체). 그 결과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인생의 모든 아픔은 죄로 인한 사망의 고통이다.

-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하신 바른 것(의)를 행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불의=죄)를 행하고 있고, 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담의 본성이 자아를 형성하고 자기 인격이기에 사람은 자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행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심으로 사람은 하나님이 계심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사고당한 비행기가 태평양 바다 5000m 아래 가라앉아 있는 것과 같다. 스스로 나올 수도 없고 누가 들어가 건져낼 수도 없다. 이게 사람의 죄 문제인 것이다. 죄는 물질이 아닌 사람 인격과 본성 문제이므로 외과수술처럼 기계적으로 제거할 수 없고 오직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다.

- 둘째, 구원은 사람 인격에 내재된 아담의 본성(죄)을 제거하고 의를 행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을 통한 죄없다하심(죄사함)와 의롭다하심(칭의)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이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하는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13:38-39)

- 구원은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며, 죄는 사람이 하나님께 지은 것이므로 하나님이 죄용서 하셔야 한다. 죄용서는 반드시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 하나님의 공의와 충돌한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친히 우리가 지은 죄의 형벌을 당하셨다. 성삼위 하나님의 본체 제2위격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예수님 십자가 앞에 자기 죄를 회개하면 죄용서 받는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할 때 그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형벌 받음으로 여기신다.

- 이것이 죄인인 우리를 죄없다하시는 하나님의 죄사함이다. 죄사함은 우리의 지나간 죄의 형벌을 면제하신다. 문제는 우리는 부활이전 까지 죄의 본성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구원받고 죄용서 받았어도 죄를 다시 짓는다는 것이다. 죄의 권세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죄인이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할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죄인에게 전가해 주셔서 죄인을 의롭다하심(칭의)를 주시는 것이다. 성령내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물론 죄없다하심(죄사함)과 의롭다하심(칭의)은 회개와 믿음처럼 동시에 일어나는 분리할 수 없는 구원사건지만 이처럼 논리적으로 구분함이 훨씬 유익하다.

- 셋째,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회복한 신약교회는 십자가 죄사함과 성령내주 의롭다하심(칭의)로 거듭난 새 이스라엘이다. 우리는 루터의 표현처럼 의롭다하심을 받은 죄인이다. 죄인이며 동시에 의인이고, 의인이지만 여전히 죄인이다. 우리는 자신의 죄와 아직도 싸우고 있고, 교회 안에서 여전히 갈등하고 힘들어 하지만, 새 아담 그리스도께 속한 새로운 피조물, 새사람들임들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동행하다가 주의 재림때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것을 믿는다.

- 교회는 약해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이 역사하시는 유일한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땅에서 교회 이외에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고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단체는 없다. 이 땅에서 교회만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라. 교회를 부정하고 새로운 예배단체를 주장하지 말라. 예배갱신을 하나님 말씀보다 찬양음악에 치우치지 말라. 성령의 기름부음을 복음진리의 하나님 말씀이외에서 찾지 말라. 사람들의 시선을 십자가 죄사함과 칭의구원 진리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예언 환상 등 그 어ᄄᅠᆫ 비성경적 요소들을 제거하라. 그리스도 구원진리만이 사람을 죄에서 벗어나게 하고 의를 행하게 변화시킨다. 죄인의 구원은 오직 그것뿐이다.

<결론 및 적용>아모스의 예언을 마치며

(1)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의를 행하게 한다.

(2)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그리스도의 교회로 세워졌다.